동국문학회 8

241208

제목: 삶삶이 무엇인지 고민한 적이 있다. * 영혼이 우주라는 작은 무대에서 인간이라는 생명에 들어와 짧은 유희를 즐거는 것이다. 태아부터 죽음이 도래하기까지 영혼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적응하며 자신을 잊어버린다. 인간에서 벗어나는 순간 영혼은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영혼은 또 다시 반복할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잊고, 새로운 삶에 적응하고, 유희를 즐기다, 다시 자신을 깨닫는다. 그러니, 언제 끝이 도래할 지 모르는 삶이여, 삶은 그저 한 순간의 유희임을 잊지 말자. * 이런 생각이 든 나는 주어진 하루하루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은 한 번 뿐인 삶이기에. 해설: 요새 빙의물을 많이 봐서...

동국문학회 2024.12.08

241109

제목: □□  □□가 깨졌다. 그건 일종이 제약이었으며, 반대로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자제력, 양심, 혹은 측은함에서부터 해방이었다. 모든 사람이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 그들의 조상 그 이전부터 유전자에 새겨진 자물쇠이다. 수많은 세대가 교체하고 섞이며 사라지기도 하고 혹은 더욱 강해지기도 했다. *  평범한 날이었다. 어느 날과 같이 출근하고, 밤새 비어 있는 메일함에 안도를 내시던 그런 하루. 점심 시간에 무엇을 먹을 지 고민하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회사에 돌아와 업무를 끝낸 후 퇴근하는 날. 그러다 갑자기 나는 내 안의 무언가 사라짐을 느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갑작스럽게 투쟁심, 파괴 욕구와 같은 감정들이 터졌다.  나는 한동안 이..

동국문학회 2024.12.03

241008

제목: 별* 너는 별들이 결혼을 한다는 말을 듣고서는 눈을 빛내며 나에게 물었어 별들의 결혼식은 우리와 비슷한지, 별들도 사랑을 나누며 사귀는지 궁금한 게 참 많은 너를 보며 나는 읽은 책을 떠올리며 하나씩 대답했어 그러자 너는 정말로 신기해하며 어린아이처럼 내 대답에 반응해주었지 나는 그런 너를 바라보다 손을 잡고 같이 풀밭에 누웠어 시원하게 불어오는 밤바람, 풀벌레 소리, 흙 내음, 희미하게 빛나는 별. 너는 조곤조곤 수다를 떨고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맞장구를 쳤어 어느 순간 세상의 모든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나는 그런 너를 바라보다 일어나서 외투를 덮어주었어 광활한 초원, 희미한 물소리, 어두운 구름, 잠든 양떼,  잠깐의 시간이, 몇 번의 소란스러움이 지나고 찰..

동국문학회 2024.10.08

240402

제목: 닫힌 엔딩 그녀는 지하철 입구에서 비가 내리는 밖을 조용히 응시하였다.한 달 만에 그를 보는 날인데 흐린 날씨에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장우산을 펴고, 천천히 약속 장소로 걸어가기 시작했다.거리에서는 벚꽃이 봉우리를 맺기 시작했고, 상가에서도 봄 노래가 흘러나왔다.인적이 드물어지는 곳에 다다르자 그녀의 눈에 카페가 보이기 시작했다. "의외의 조합" 대학생일 때 자주 갔던 카페다.산책을 좋아하던 그와 함께 성곽길을 걸어가다 알게 되었다.카페 주변에는 높은 성곽만이 있어, 사람들이 자주 오지 않는 점이 그들에게 어울리기도 하였다.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두 잔 주문하고 항상 앉는 구석자리에 몸을 눕혔다.추위를 많이 타는 그녀는 아메리카노를 받자마자 두 손으..

동국문학회 2024.09.19

231214

제목: 마른 익사* 비가 내린다 우산이 없어 심장이 젖는다 가랑비로 혹은 소나기로 너무 무거워 심장을 도려내니 요동치는 박동에 투명한 피가 흘러넘쳤다 그 자리에 땅을 파 조심스레 묻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그 곳에는 잔향만이 남아 있다. * 나선미 '시인의 사인은 이름도 애절한 마른 익사였다.'  해설: 비는 그리움을 상징합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건 막을 수 없기에 화자는 우산이 없습니다. 그리움은 마음에서 일어나므로 심장이 그리움에 젖는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리움은 조금씩 때로는 강하게 밀려올 수 있습니다. 그리워하는 날이 겹겹이 쌓이면 마음이 힘듭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동국문학회 2024.09.19

230921

제목: 여름맛 아이스크림   그녀를 알게 된 건 대학교 동아리 후배의 소개였습니다. 일 년간 활동을 마침표로 찍고 취업 준비를 하던 저에게 친한 동생이 밥을 먹자로 연락이 왔습니다. 개강하고 처음 본 저희는 자주 가던 학교 앞 백반집에서 파불고기 2인분을 주문한 후에 서로의 근황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방학에 알바를 했다. 이번 학기는 시간표가 망했다. 등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후배가 저에게 대뜸 물었습니다. "형은 왜 동아리를 나간 거예요?" 적응을 잘하던 제가 올해 초 동아리를 갑자기 그만둔 것이 많이 서운했나 봅니다. 주변에 비슷한 질문을 하던 지인들에게 '졸업반이 되었으니 슬슬 취업 준비해야지'라고 대답하듯 후배에게도 비슷하게 대답을 했지만 끈질기게도 물어 당기더군요. "에이 동아리 사람들 다..

동국문학회 2024.09.19

230802

제목: 독백   나를 거둬 주신 분과 여기에 함께 산 지 해가 천 번이 뜨고 졌다.   내가 사는 곳은 주변에 나무가 많은, 그래서 인지 큰 나무 기둥으로 지어진 작은 동굴이다. 이 기이한 곳에서 그와 함께 살면서 신기한 경험을 많이 겪었다. 그는 손짓 한 번으로 시냇물을 만들고 또 손짓 한 번으로 허공에 불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지금은 적응을 했다. 나는 내가 가진 궁금증을 그에게 물어봤지만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대답을 했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와 나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찮다. 비록 소통이 어렵지만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이 이를 해결해주었다.   우리의 규칙은 단순했다. 해가 뜨고 나서 식사 한 번, 해가 머리 위에 있을 때 식사 한 번, 그리고 해가 질 때 식사 한 번이..

동국문학회 2024.09.19

230601

제목: 기도(Pray)   P는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몰랐다. 단지 이성이 생길 무렵 그는 전쟁터 속에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가 몇 살인지 남성인지 여성인지 심지어 자신의 이름도 모르는 그는 난민촌의 낡은 천막에서 하루를 버티며 살았다. 전쟁터는 약자들에게 지옥이었다. 폭력과 폭언, 마약, 강간, 집단구타, 총격 등은 심상치 않게 볼 수 있었고 자고 일어나면 사라지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다. 그에게 다행인 점은 그가 선천적으로 성인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누구든지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주위에서는 그를 괴물이라고 부를 뿐이었다. 그는 살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 하는 자는 죽이고 이득이 되면 이득을 취했다.   혼자 사는 게 익숙해질 무렵 그는 L을 만났다. 또래인 그녀..

동국문학회 2024.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