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문학회

230802

johyeongseob 2024. 9. 19. 22:28

제목: 독백

 

  나를 거둬 주신 분과 여기에 함께 산 지 해가 천 번이 뜨고 졌다.

 

  내가 사는 곳은 주변에 나무가 많은, 그래서 인지 큰 나무 기둥으로 지어진 작은 동굴이다. 이 기이한 곳에서 그와 함께 살면서 신기한 경험을 많이 겪었다. 그는 손짓 한 번으로 시냇물을 만들고 또 손짓 한 번으로 허공에 불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지금은 적응을 했다. 나는 내가 가진 궁금증을 그에게 물어봤지만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대답을 했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와 나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찮다. 비록 소통이 어렵지만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이 이를 해결해주었다.

 

  우리의 규칙은 단순했다. 해가 뜨고 나서 식사 한 번, 해가 머리 위에 있을 때 식사 한 번, 그리고 해가 질 때 식사 한 번이다. 가끔 그가 일이 잘 안풀리는 날에는 집 밖으로 나와 산책을 갔다. 나는 집에서 쉬는 걸 좋아하지만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도 좋아해서 종종 따라 나서곤 했다. 오랫동안 나는 그를 봐왔지만 그는 도통 무엇을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한 자리에 앉아서 손으로 검은 막대기를 쥐고 무언가를 그리는데 그가 주로 사용하는 언어를 써 놓은 거라고 생각이 든다. 가끔 내가 그의 곁으로 다가가면 그는 조용히 나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그의 손길이 기분 좋았지만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곁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다.

 

  매일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그와의 만남이 생각나곤 했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날 엄마와 헤어져 불안해하던 어린 나를 그가 손을 내밀어 자기 집으로 초대해주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집 구석에 한동안 웅크려있었다. 엄마, 아빠 생각이 많이 났다. 여기에 있으면 더 이상 가족을 볼 수가 없는 걸까. 다들 비에 젖고 있진 않을까. 나 혼자 있어도 될까. 여러 가지 생각이 뒤엉켜 있었다. 한동안 있다 그가 건네준 물을 마셨다. 옆에 먹을 것도 주었지만 배가 고파도 입에 넘어가지 않았다. 몇 일을 그렇게 보냈다. 나를 데려온 사람은 나보다 덩치가 커서 무서웠지만 나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아마 죽지 않았을까 싶기에 그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는 그런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가끔 내게 와서 물과 먹을 것을 주는게 다였다. 사흘 째, 배가 고파 그가 건네준 음식을 먹었다. 나를 본 그는 미소를 띄었다. 이후 나는 그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야위었던 몸은 다시 건강해졌고 그와 함께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였다. 같은 시간에 잠을 자고 깨어 났다. 그리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행동을 하였다. 나 또한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그와의 생활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단조롭지만 평화로운 생활이고 앞으로도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해설: 화자는 고양이입니다. 큰 나무기둥으로 지어진 작은 동굴은 오두막집이고 인간의 문명을 고양이의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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