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기도(Pray)
P는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몰랐다. 단지 이성이 생길 무렵 그는 전쟁터 속에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가 몇 살인지 남성인지 여성인지 심지어 자신의 이름도 모르는 그는 난민촌의 낡은 천막에서 하루를 버티며 살았다. 전쟁터는 약자들에게 지옥이었다. 폭력과 폭언, 마약, 강간, 집단구타, 총격 등은 심상치 않게 볼 수 있었고 자고 일어나면 사라지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다. 그에게 다행인 점은 그가 선천적으로 성인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누구든지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주위에서는 그를 괴물이라고 부를 뿐이었다. 그는 살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 하는 자는 죽이고 이득이 되면 이득을 취했다.
혼자 사는 게 익숙해질 무렵 그는 L을 만났다. 또래인 그녀는 전쟁에 휘말려 두 눈을 잃고 고아원에 맡겨진 아이였다. 두 명의 군인들에게 식량을 빼앗기고 겁탈을 당하려던 때 P는 우연히 그 길을 지나갔고 불똥이 튄 그는 그 군인들을 죽여버렸다. L은 P에 대한 소문을 들었지만 자신을 구해준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평생 혼자였던 P에게 그녀의 온기는 마음 한 켠에 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혼자가 된 그는 이 감정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라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는 그녀를 다시 만나지 말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L을 다시 만난 P는 그녀를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외로움을 깨달은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아원의 관리인이자 L의 양부인 M은 식량 배급을 위해 고아원을 찾아온 P를 만나면 인사했지만 P는 그녀 이외에는 여전히 적개심을 드러낼 뿐이었다. M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친절하지도 냉대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가 다른 원생들과 크게 싸울 때 제지하기만 할 뿐이었다. M은 최근 들어 자신의 딸이 친구를 사귀었다며 그녀가 잠이 들 때까지 기쁘게 떠드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일상이 되었다.
찬바람이 불던 이른 새벽 공습경보가 울리고 마을에 미사일이 떨어졌다. 미사일 중 하나는 고아원에도 떨어졌고 미처 피하지 못한 아이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죽어갔다. 그 중 L도 포함되었다. 해가 뜨고 P는 M에게 L의 부고를 들었다.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간 P는 한동안 음식도 물도 먹지 않았다. 모든 것을 함께 한 첫 친구가 자고 일어나니 죽었다. 그에게 L은 자신이 알고 지낸 유일한 사람이기에 그 공습으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다. 다시 혼자가 된 그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른 채 가만히 웅크려 있을 뿐이었다.
소식이 없어 찾아온 M은 그를 보고 전쟁에 대해서 그리고 L을 만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사람들은 서기 2050년에 기술적 정점을 맞이하며 낙원을 꿈꿨으나 부작용으로 인한 급격한 기후변화, 지진과 해일, 가뭄 등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난민 증가와 식량부족으로 인한 결과, 전쟁이 발생했고 이는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각국은 승리하기 위해 기술을 전쟁에 이용하고 10년간 지속된 전쟁에서 M은 난민으로 들어온 L을 만나 자신의 양녀로 삼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M은 P에게 식량을 건네 준 다음 한 달 뒤에 다시 오겠다고 말한 뒤 떠났다. P는 미동도 없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 다시 찾아온 M은 기이한 광경을 보았다. P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한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다. M은 그 아이의 눈이 녹색 눈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신의 딸이 언젠가 다시 태어난다면 녹색 눈을 가지고 싶다고 곧잘 이야기하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곧 M은 몇 년 전에 본 신문이 떠올랐다. 각국에서 생명공학과 기계공학을 이용하여 자가복제가 가능한 로봇을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윤리적 문제로 인해 해당 기획은 폐기되었다고 들었다.
M은 이를 정부에 신고해야 할지 아니면 못 본 척할지 고민하였지만 곧 체념하였다. M은 사건의 경위를 물어보았고 P는 고아원의 아이들이 크리스마스에 기도를 하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천막에서 홀로 기도를 하였다고, 그래서 이루어졌다고 말하였다. M은 P에게 혼자 살고 있는 한 지인을 소개하였다. 여기로 가면 둘이 함께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P는 잠깐 고민하였지만 그녀를 잃은 기억을 상기하고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이후 M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안고 자신이 알려준 곳으로 떠나가는 P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해설: 네이버웹툰 ‘나이트런(김성민)’의 프롤로그 편을 각색하였습니다. 나이트런 추천!